실험과 소통

December 11, 2024
 지난 번 창동스튜디오에서 열린 이광호 개인전 《Inter-View in Changdong》(2006)은 작가에게 있어서 새로운 전기가 된 획기적인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는 작가의 작업 과정을 소상히 보여주는 다큐 형식의 비디오의 방영으로 인하여 더욱 빛이 났다. 작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봐 온 지인들을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들의 멘트가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이 프로그램은 이광호의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가 하는 점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모델의 선택에서 섭외에 이르기까지 이광호의 작업 과정은 여느 초상화가와는 달리 매우 까다로운 편인데, 그것은 대상의 선택 자체가 작가의 심미적 센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호는 다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택한 인물을 그린다. 맨 먼저 앉은 자세의 모델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뒤, 약 1시간 정도 직접 스케치를 하고 다시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다음 다시 모델을 앉혀놓고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이 공통된 제작 과정이다.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광호는 편안한 상태에서 모델과 이야기를 나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델 특유의 향취를 느끼게 되고, 그는 그 느낌을 화면에 담아낸다. 흔히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왜냐하면 얼굴이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청년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그 나름대로의 표정을 얼굴에 간직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광호는 유성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 표정을 가감없이 담아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호의 작업은 표정의 박물관 혹은 인생의 모음집이랄 수 있다.
 
 이광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표정하다. 어떻게 보면 일부러 그런 것처럼 의도적인 것으로 보일 법도 하다. 따라서 모델에 따라서는 불만도 없지 않을 성싶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작업이 인생의 한 축도로서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왜 그의 인물화들이 무표정한 모습을 띠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의문이 풀리리라고 본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같은 철제의자에 앉아 있다든가, 반신상의 포즈로 되어있는 점을 눈여겨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이광호의 인물화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다. 작가, 주부, 수사, 학생, 큐레이터, 평론가 등등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25호 P형(80.3x60.6cm)의 캔버스에 갇힌 상태에서 등장인물들은 고유의 표정을 발산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모델들의 표정을 뜯어보는 재미는 매우 쏠쏠하다. 관객들은 모델들의 복장을 통해 직업을 추측할 수도 있고, 특유의 인생 편력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물화는 정물화나 풍경화와 달리 사고의 주체로서 인간의 모습을 담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영역이다. 그래서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인간에 대한 유일한 기록 매체로서 인물화가 각광을 받아왔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인물화는 쇠퇴일로를 걸어왔다. 무비 카메라의 등장은 한 인물의 인생 전체를 다큐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물화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하여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영화와 비디오의 탄생은 설상가상으로 인물화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폰 카메라가 성행하는 세상에서 이광호의 작업은 얼핏 동키호테적 만용으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편리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땀을 흘리며 인물화를 그린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카의 등장으로 인하여 이제 모든 대중은 예술가의 칭호를 부여받게 되었다. 대중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포토샵의 다양한 기법은 사물의 존재감을 왜곡하여 가짜 이미지를 양산하여 유포시킨다. 바야흐로 사물의 현존이 위협을 받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이 시대의 풍경은 다시 예술의 위기를 논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 육필의 생생한 느낌으로 대상의 표정을 그려내는 이광호의 작업이 논쟁의 핵으로 떠오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광호가 단순히 인물화의 고전적인 형식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시대에서 어떻게 인물화가 생존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관해 그는 고심한다. 그는 비록 제작과정 중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대상을 촬영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대상을 묘사한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별도의 분석을 요하지만(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그리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 어쨌든 그가 인터뷰 장면을 편집하여 다큐 형식의 비디오를 전시장에서 방영하는 것이라든지, 모델들이 소지한 물건을 전시장에서 전시하는 행위 등등은 기존의 인물화만을 모은 전시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실험으로 간주하여야 할 것이다.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