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십-터치-봄과 보여짐
살면서 스킨십은 얼마나 하게 되나? 억지로 인위적으로 당하면 오히려 어색하게 되어 관계에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스킨십만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없다. 성장기 어린 이에게 스킨십은 ‘믿음, 즐거움, 소통’이다. 어른에게 스킨십은 ‘위안이며 응원’이다. 노년에게 스킨십은 ‘행복’이다.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것은 피부에 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터치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본성이 있다.
화가 이광호는 120명의 인물의 초상을 그린 인터-뷰 연작을 그리다가 자신이 보고 있는 모델과 마치 스킨십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이어서 촉각적인 아우라를 살려 선인장 연작에 담았다. 이광호의 선인장 그림은 그의 촉각적 표현 욕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리즈라고 한다.
“특히 선인장의 가시 표현은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시는 붓질로 그린 형태가 마르기 전에 니들로 자유롭게 긁어낸 행위의 흔적들이다. 구획된 형태가 흐트러지면서 선인장의 특별한 가치가 두드러지는 그 순간에 나는 그리기의 쾌감을 느낀다.” 이광호는 캔버스와 스킨십한다.
이광호는 자신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런 걸 그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 당시 이광호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좋아하는 대상과 마주 보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시선의 아픔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시선에 대한 문제를 자신의 욕망과 빗대서 생각하면 솔직한 그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려본 그림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그림 안에 그림이 있다.
시선에 대한 문제를 욕망과 빗대어 그린 〈나의 그림〉
이광호가 그림의 주제를 두고 고민하던 대학원생 시절, 당시 미술계의 흐름은 추상표현주의나 단색화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린다는 건 이광호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로널드 키타이(Ronald Brooks Kitaj)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에게 조언했다는 “가장 너다운 것을 그려라. 너만의 솔직한 표현이 가장 예술적이다”라는 그 글귀를 읽고서 이광호는 자신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런 걸 그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 당시 이광호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좋아하는 대상과 마주 보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시선의 아픔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시선에 대한 문제를 자신의 욕망과 빗대서 생각하면 솔직한 그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려본 그림이다. 〈나의 그림〉(1996)은 구조적으로 보면 그림 안에 그림이 있다.
그림 안에 마치 여자가 있는 것처럼 오브제를 그렇게 놓았다. 캔버스를 12개의 칸으로 구분하고 여러 개의 시선이 존재하게 했다. 그림 안에는 캔버스 오른쪽 끝에서 턱을 괴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과 그녀 앞의 컵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있다. 여인을 훔쳐보는 화가의 손은 〈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예 화가는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의 흔적을 그림에 포함시켰다.
그녀의 방향으로 컵의 손잡이를 그려놓고, 그 두 컵 사이에 롤랑 바르트(Barthes Roland)의 『사랑의 단상』(문학과 지성사, 1991)이라는 책을 놓았다. 당시 이광호가 잘 읽던 책이다. 〈나의 그림〉은 실제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어긋난 시선을 담아낸 작품으로 ‘봄과 보여짐, 이중의 시선 연구’이다. 이광호가 개인적이고 소소한 경험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대상화하는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함이다.
이런 경우는 일상에서도 쉽게 경험한다. 집에 손님이 어쩌다 한 번 올 때면 문을 열어주며 맞이하고 뒤를 돌아서 집을 보는 순간, 계속 살던 집인데도 다른 면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해보았을 거라 짐작한다. 특히 청소를 하지 않은 부분이 갑자기 두드러지게 보여 창피해진 경험이 있을 텐데, 이처럼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올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계기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손님이 가시고 나서 부득불 그 부분을 청소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행동은 타인과 진정 마주 보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고 이광호는 생각한다.
마주 보고 대화하면서 그린 Inter-View
2005년도에 창동 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그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린 연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원하는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있는 미술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이다. 처음에는 100명을 그리려 했으나 종내는 120명을 같은 형식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고 한 번 이상 본 사람들인데, 한두 시간 모델과 함께하면서 정확히 180cm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대화와 그림 그리기를 병행했다. 대화하면서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전시하기도 했다.
동료 작가나 미술계 관련 인사, 그리고 창동 스튜디오 주변의 음식점 사장을 비롯한 각계각층 사람들에 관한 인터-뷰(Inter-View)는 ‘시선의 문제’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였다지만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 싶은 이광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시선의 문제’는 단순히 보는 문제를 말하는 건 아니다. 나와 너, 서로의 입장, 그리고 욕망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응시이론에서 “타자의 존재란 내가 타인을 볼 때가 아니라 내가 타인으로부터 보일 때 더욱 잘 확인된다”라고 했다. 타자 인식은 봄과 보여짐의 긴장을 내포하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상호적인 대화에서는 누구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용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을 이광호는 좋게 여긴다.
2015년, 화가의 아틀리에를 탐방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광호의 작업실을 보았다.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그곳은 화면상으로만 보아서 작업실의 규모를 잘 알 수는 없었다. 구획이 잘 나뉜 방에는 인터-뷰 연작만 벽에 걸려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 벽면에 여섯 명 정도 걸려 있었으니 삼면이라 생각만 해도 어림잡아 열여덟 명의 시선이 그 공간의 가운데 지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 향하게 되어 있었다. ‘마주 보는’ 상황이 중요해서 초상화로 둘러싸인 공간을 작업실에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간에 들어선 인터뷰어는 엄청난 시선의 부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나는 방에 등신 사이즈의 초상화뿐 아니라 사진도 놓지 않는다. 인물의 시선이 어떤 때에는 불을 껐는데도 느껴질 때가 있어서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광호는 100명이 둘러싸며 자신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아주 궁금했었다고 하면서 그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모델들과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그리는 과정에서 질의와 응답을 통해 상대방과 공감하는 좋은 케미를 느껴서 그런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이광호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마주 앉은 모델을 구석구석 뜯어 보아야 한다. 윤기 나는 머릿결, 보드라운 피부, 까슬까슬한 옷의 질감까지 하나하나 느끼고 표현한다. 이광호는 ‘저걸 만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를 내내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내가 저 사람을 만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애무하듯 말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감각의 논리』(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에서 이러한 시각적 경험을 ‘눈’길도 아니고 ‘손’길도 아닌 ‘만지는 눈, 만지는 시각’으로 표현했다. 만지는 눈은 무슨 뜻일까? 만지는 눈의 대표적인 예는 변태의 시선이다. 지하철에서 변태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아래위로 꼼꼼히 훑는 시선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촉각적인 느낌을 받는다. 바로 ‘만지는 눈’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것도 이러한 공감각을 나타낸다. 이광호의 촉각은 인물화를 그리면서 캔버스 위에서 일깨워졌다.
정물화지만 마치 인물화를 그리듯
이광호가 종로 거리를 지나치다가 우연히 선인장을 보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게 선인장 연작이다. 선인장은 생명력이 있고, 또 이미지가 꼭 그것으로만 안 보일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시각적으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의 촉각이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하다고 감각했다. 정물화이지만 마치 인물화를 그리듯 선인장 연작을 그렸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작고 선인장이 극단적으로 확대되어 환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솜털까지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그려졌다. 포토리얼리즘 그림으로 시작하지만, 작가가 마무리 단계에서 선인장 가시에 자유롭게 가하는 터치의 흔적으로 인해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은, 쉬르레알리즘 작품으로 변해가는 매력이 가미되었다.
사진을 보고 사실적으로 세세하게 그린 선인장 표면에 액션을 가미하여 자유롭게 긁어낸 흔적은 작가의 손길을 보여주며 개성과 욕망을 드러냈다. 유화는 더디 마르니까 마르기 전에 판화 도구인 니들로 긁어내서 자취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광호는 고무 붓이나 니들로 캔버스 표면의 물감을 ‘벗겨낼 때’ 느끼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미 그려놓은 그림의 표면을 고무 붓으로 뭉개거나 니들로 긁어내는 일은, 붓으로 어떤 형태를 그려 만들어내는 것과는 정반대인 ‘탈’ 만들어내는 행위다. 애써 형태를 잡고 색을 칠해놓은 캔버스 표면 위에서, 니들을 든 이광호의 손은 그렇게 그린 것들을 뭉개고 또 긁어냈다. 캔버스 위를 자유롭게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파괴 욕구를 만끽한다. 선인장 연작은 터치하고 싶은 바람을 충실하게 충족시킨 결과물이다.
김재희(미술 도슨트)
『처음 가는 미술관 유혹하는 한국 미술가들』(2019, 벗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