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낯선 풍경
처음엔 그림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사람 키만큼 크게 그린 선인장과 어쩐지 낯익은 풍경들. 겉보기에 쉽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와도 친분이 좀 있을뿐더러 작업실도 몇 번 가봤으니…. 하지만, 착각이었다. 막상 글을 쓸 것을 약속한 다음 며칠이 지나도록 미궁 속을 헤맸다. 마치 안개 속에서 늪을 건너고 있는 기분이랄까, 분명 지근거리에 불빛은 보이는데 발은 점점 빠져들고 시야조차 점차 흐려지는 막막한 격이었다.
얼핏 보면 일상적인 ‘정물 풍경’처럼 간단하고 쉬운 그림이니, 그저 ‘한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이광호’로 소개하면 될 것도 같은데….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저 그런 사실적인 구상화는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게만 이해한다면, 수박의 겉이 녹색이니 속의 색깔도 같다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는 실타래로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가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광호 회화’의 매력! 가깝고도 먼 신기루처럼, 내 안에서 낯선 풍경들을 발견하는 생경하고도 설레는 체험처럼, 볼수록 흥분을 돋우는 이광호 작품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선 욕망으로 시작해 명상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굵고 곧게 솟은 선인장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도발적인 남근(男根)을 보는 듯하다. 그 섹슈얼적인 아우라는 미세한 신경까지 건드리며 숨 막히는 흡입력을 발산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초신경으로 보기 시작한 그림은 어느덧 시간이 흐를수록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욕망의 끝은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했던가? 작가의 첫인상은 유독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듯 보인다. 아무리 봐도 욕망과는 거리가 먼 관상인데, 그 안에 굵직한 욕망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니, 서로 닮은 두 모습을 생각할수록 신선하고 재기발랄하지 않은가.
다음으로 친숙함과 생경함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극사실 회화기법으로 구현한 선인장은 잘 나온 증명사진처럼 ‘친절한 사실감’을 전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선인장을 작게는 수십 배, 크게는 수백 배를 뻥튀기했다. 마치 눈앞에서 선인장의 숨겨졌던 미세한 핏줄까지 보는 듯해 ‘거짓된 리얼리티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소재가 주는 친숙함과 동시에 너무나 거대해져 발산되는 전혀 다른 생경함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이처럼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빨아들이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은 스웨덴 출신으로 세계적인 팝 아트의 거장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가 친숙한 일상의 사물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확대해 보는 이의 경탄과 감동을 자아내는 조각품의 미학 코드와 다름없다.
타고난 집중력으로 작가적 순수노동력을 아끼지 않는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 일찍 나와서 망설이는 시간 없이 바로 붓을 들 때가 좋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상적으로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8시 정도에 퇴근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평균 8~10시간은 작품에 집중하는 셈이다. 이런 집요함 끝에 너무나 흔하고 단순한 소재인 선인장을 ‘유화의 붓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소재’로 탈바꿈시켰다. 가장 큰 경쟁력이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라면, 작가의 경우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조형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광호에게 선인장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일상적인 형상의 재현을 넘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선인장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 관능의 색, 무의식의 욕망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애무의 흔적”이라고 답한다. 그러고 보면 이광호는 자신의 작품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의 붓엔 혀가 달린 듯하다. 아주 미세한 실선들이 빠른 속도로 수없이 겹쳐 완성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잭슨 폴록이 무심결에 페인트 통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표현했다면, 이광호는 한술 더 떠서 자신의 미세한 혈관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낸 것 같다. 이는 부분적으로 유화가 마르기 전에 원터치 속필로 완성한 효과이다. 잭슨 폴록이 무기교의 수필가라면, 이광호는 세밀한 지문까지 챙기는 시나리오 극작가이다.
상상해 보라. 전광석화처럼 빠른 붓놀림으로 바늘 선만큼 가는 선들을 풀어낼 때의 손끝은 얼마나 에너지로 충만했겠는가. 그래서일까, 이광호의 그림에선 ‘무의식의 기묘한 에너지’가 발산하는 것이 감지된다. 그것은 그의 붓놀림이 곧 무의식 속에 잠들었던 욕망을 깨우는 의식이며, 그 욕망에게 바치기 위한 전희(前戱)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광호의 그림은 사랑에 대한 끝없는 욕망의 구애이고, 내면의 솔직한 감흥을 에너지로 시각화한 셈이다.
화가의 선호하는 색깔은 그 작가의 감성이나 심리상태를 밖으로 내비치기 마련이다. 이광호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붓질과 색의 배합은, 보는 이에 따라 서로 다른 화면의 질감을 선사한다. 클로즈업된 선인장을 활용한 화면구성이 워낙 독특하고, 천차만별 갖가지 선인장 종류의 특성에 따라 붓이나 붓질도 달라진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양한 선인장이 지닌 고유의 개연성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정하는 이광호의 붓질은, 곧 그 자신의 감성을 대변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상의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하는 점은, 화면의 조화와 구성․터치․색조보다 앞서 화가 이광호가 화두로 삼고 있는 숙명이다.
인터-뷰 시리즈에서 선인장과 풍경까지
이광호의 작품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 안의 욕망’이란 중심 테마는 변함이 없다.
첫 개인전은 1996년 ‘시선’이란 주제로 가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지 못한 자신의 체험, 감정표현에 있어 애정결핍의 내면 심리를 작품화 했다. 꼭 젊은 청년이 아니더라도 애정표현을 못한다는 것은 분명 큰 결함이며 상처일 것이다. 이런 절절한 경험들을 일기를 쓰듯 고백한 그림들이었다. 이후 2001년부터 2003년 사이엔 ‘가족’을 주제로 작업했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아이로 인해 그 소중한 과정들을 기록한 그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깍기〉(2001)와 〈태몽〉(2003) 등의 제목이 등장한다.
2003년까지 개인사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마치고,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Inter-View’ 시리즈를 선보인다. 입주 1년 동안 무려 75개의 초상화를 완성했을 정도로 새로운 작업에 열정적이었으며, 120여 명의 주인공을 끝으로 인물 연작을 마친다. 결국 인터-뷰, 인물화 시리즈 이전의 작업들은 작가 개인의 경험이나 시각이 중심이 된 서사적인 이야기 형식이었다.
2006년 이후 시작된 지금의 ‘선인장’ 시리즈는 설명적이고 언어적인 요소가 배제되고, 최대한 감각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것이다. 새로운 작업을 고민하던 시기 우연하게 종로 5가를 지나가다 화초 가게에서 선인장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선인장이야말로 감각 중에서도 촉각적인 요소와 시각적인 요소를 한꺼번에 표현하기 아주 적합한 소재이다.
지금의 작품은 선인장 표현에 있어 시각적 의도 외에 어떤 메시지나 상징도 배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한 붓에 중첩된 것 없이 단박에 표현했다. 겉보기엔 지금의 선인장 시리즈는 이전의 인물화와 전혀 다른 형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꼼꼼히 살피면 둘에서 아주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표현하고자 한 대상을 배경 없는 화면에 배치한 것이며, 대상 자체의 감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내면의 표정을 시각화하려는 노력, 작가적 의지의 개입 역시 최대한 절제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결국 이광호의 인물화 시리즈나 선인장, 풍경화 시리즈는 모두 한 뿌리에서 자란 여러 개의 줄기인 셈이다. 한 뿌리로 시작해 계절에 따라 줄기가 더 자라고, 이파리 색깔도 달라지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이치처럼, 이광호의 작품들은 동체이지(同體異枝)인 셈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진화와 매력
인간의 욕망은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인간의 욕망은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의 노예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중에서 삶의 욕망과 죽음의 욕망, 이 두 개의 원초적 욕망은 인간을 옭매이기도 자유롭게도 한다.
인간은 진화하고 환경은 변용해 왔다. 인간의 마음 역시 함께 진화한다. 그 중심엔 욕망이 있다. 이광호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 욕망을 건드린다. 대학 시절 예술가의 우상으로 음악가인 윤이상을 꼽아서일까, 이광호의 욕망은 잠든 듯 조용하지만 특유의 리듬을 지니고 있다. 본능과 생존의 삶 사이를 오가며 쉼 없이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는 곧 생명에 대한 메시지이다.
삶아 있음, 살고 싶음, 욕망의 기쁨…. 이광호의 그림은 곧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까지 아우른다. 얼핏 보아선 너무나 견고한 형상으로 비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실선이 뭉친 허상일 뿐이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잡을 수 없는, 실상이면서 허상이고, 색(色)이면서 곧 공(空)이다. 그 사이에 그 존재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광호의 그림에서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이나, 도가(道家)의 ‘무위[無爲, 무위자연]’ 이념까지 스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광호의 붓질 애무로 한껏 살 오른 욕망의 기둥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