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광호 화백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인사동 어느 갤러리에서 있었던 그의 전시회에서였다. 3인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함께 여는 전시회였기 때문에, 그때 내가 본 그림들 중 어느 것이 그의 작품이었던가 하는 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구도자처럼 진지하면서도 야심에 찬 화가 이광호를 잊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던 금년 2월, 이 화백의 친구인 나의 지인이 뜻밖의 전화를 걸어왔다. 이 화백의 최근 작품들을 한번 볼 의향이 있느냐고 말이다. 나는 이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3년 전에 만났던 그 총명한 젊은 화가가 그사이에 이룩해 놓았을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기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해서 나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업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그림들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화폭 가득히 재구성되어 있는 거대한 선인장들은 정말이지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들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말없이 서 있는 거대한 석상들처럼 이광호의 거대한 선인장들 또한 과묵한 표정들을 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이광호는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13년간 인물을 탐구했고, 풍경을 탐구했고, 그리고 이번에는 선인장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는 다만 사물의 모양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의 촉감까지 탐구하려는 엉뚱한 야심으로 한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브제에 대한 그의 치열하고도 끈질긴 탐구는 마침내 화폭 위에 경이롭고도 신선한 석상들을 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고 있는 한 사람의 단순한 화가가 아닌, 사물이 내재하고 있는 어떤 비밀을 탐구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를 느끼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광호의 화폭에 담긴 오브제들은 관람자들이 기대하는 어떤 로맨틱한 대화도 거부한다. 풍경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냥 펼쳐져 있을 뿐이고, 인물들은 말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고, 거대한 선인장들은 석상처럼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그 고집불통의 오브제들을 보면서 관람자들이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이 풍경이 되었건 인물이 되었건 사물이 되었건, 그림 속의 오브제들이 나름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관람객들에게 대화를 걸어오는 인상주의 회화에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모네(Oscar-Claude Monet)의 수련(Les Nymphéas) 시리즈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De Aardappeleters, 1885)이나 세잔(Paul Cézanne)의 몽 생 빅투와르(Mont Sainte-Victoire) 시리즈가 우리에게 걸어오는 대화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편한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식상한 방법이고, 예술의 본질이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이광호는 감정이입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 속에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런 기분 때문에 그랬겠지만 나는 이 화백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이질적인 오브제들을 중첩시켜보면 어떨까요? 가령, 선인장더미 속에 낡은 벽시계가 파묻혀 있다고 하면?”
나의 이 말에 이 화백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의 발상이 얼마나 세속적인가 하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어떤 추파도 던질 생각이 없이, 흰 바탕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고집불통의 거대한 선인장 앞에서 내가 모아이 석상을 떠올렸던 것은 이런 점에서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광호의 그림 앞에서 완상을 하기 보다는 성찰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광호의 선인장들을 보기 전까지 나는 초록색이 무서우리만치 강렬하게 느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초록색은 인간이나 동물들을 편안하게 하는 색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만 같이 생생하게 그려진 거대한 선인장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강렬한 청록색 앞에서 어떤 경외심과 공포심까지 느끼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거대한 선인장들은 시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물의 모양뿐만 아니라 촉감까지 탐구하겠다는 이광호의 야심이 일련의 선인장에서 정점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광호의 선인장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접목선인장들이다. 삼각주 위에 초록색이나 빨간색 모수를 이고 있는 접목선인장은 관상용으로 판매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접을 붙여 재배한 것이다.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접목선인장들이 이광호 화백의 손을 거치면 경악할만한 것으로 변한다. 거대하게 자라 있는 접목선인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낯선 우주 공간 속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리고 화가는 화폭 위에 마성적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상용으로 만든 선인장의 그 가공할 생명력 앞에서 인간이 위축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여기에 이광호가 탐구한 사물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의 예술적 성취에 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이광호 화백은 이제 열정만 앞서는 치기어린 젊은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는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싱싱한 나무처럼 자란 중견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만들어놓은 그 치열한 작품 세계를 둘러보면서 나는 몹시 행복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이 화백의 탐구는 선인장들로 끝이 난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세계를 화폭 위에 펼쳐놓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2010년 3월 18일
하일지
《Touch》(2010, 국제갤러리)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