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인터뷰

미상
November 1, 2006
* 최근 작업은 모델이 되는 인물과 인터뷰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모델의 선정은 어떻게 하고 모델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가?
모델은 일방적으로 내가 결정해서 제의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예쁜 사람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 서로 간에 어느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두 번 정도 내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모델에게는 모델료를 지불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에게 어떤 소품을 줘야 하고, 작품을 팔지도 않는다. 대신 술을 겸한 식사대접을 한다. 순수하게 인간적인 관계로 그리는 거고 내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는 거다. 따라서 대화의 내용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솔직하게 서로에 대해 궁금해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 비디오와 소품이 그림과 갖는 연관성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기억의 방편이다. 인터뷰 된 비디오와 소품은 모델에 대한 여러 기억들을 담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이 기억들을 화면에 투사하고 집약하게 된다. 물론 모델과 직접 마주 보고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이내이고 주로 사진을 보고 그리지만, 사진이미지의 기억만으로는 그 인물에 대한 확신을 갖기 힘들다. 어쩌면 이 비디오와 소품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나한테만 필요한 것이지, 전시 관람객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 많은 수의 그림을 그렸는데 한 작품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요즘에는 하루 내지 하루 반(11–17시간)걸린다. 피부와 옷의 촉감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덧칠하지 않고 최대한 붓질을 살리면서 한 번에 그린다.
 
*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짝사랑이 반복되면서 10년 전부터 마주 봄(Inter–View)이 내 작업의 화두로 등장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몇 번 의뢰 받은 초상화를 그리면서, 거의 모든 의뢰인이 품고 있는 ‘유사성에 대한 의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초상화는 화가가 기억하는 모델의 모습이고, 모델 스스로 기억하는 혹은 상상하는 본인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델의 움직임과 말을 기록한 동영상과 모델에 대한 나의 기억(그림)을 비교하고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 《Inter–View in Changdong》(2006), 《회화술》(1998), 《그리기/그림》(1999), 《재현의 빈 곳》(2003)같은 제목의 전시를 통해 작가 류용문, 김형관과 함께 일종의 소그룹활동을 해왔다. 이처럼 개인뿐 아니라 다른 작가와 함께 전시를 진행해 오며 겪은 장단점은 무엇인가?
1997년부터 진행했던 삼인전은 그림에서 읽혀져야 할 것들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있다는 답답함과 개별 창작이 갖는 나태함이나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제작 과정에서 느꼈던 감각의 문제와 화가의 태도나 조건 등이 결과한 작품과 함께 논의될 수 있는 말들을 각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일종의 스터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고 이후의 개별 작업을 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서로 간에 상승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공통의 관심사가 부족할 때에는 전시를 위한 전시가 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 회화의 위기를 걱정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최근에 다시 회화가 힘을 얻고 있다. 회화의 미래를 어떻게 예견하는가?
시장에서의 수요문제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외부적 요인과는 상관없이 좋은 화가와 그림은 항상 있어왔다. 유행의 흐름과 상관없이 회화의 다양한 영역들이 골고루 인정받았으면 한다. 그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 끝이 안 보인다. 오래전부터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회화는 인간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아주 유효한 시각매체일 것이다.
 
* 다른 미술장르, 특히 비구상 회화에 대한 의견을 밝혀 달라.
내 집에 그림을 건다면 샘 프랜시스(Sam Francis) 의 작품 같은 색면추상이나 미니멀한 그림을 진열할 것이다. 이러한 추상미술은 캔버스가 가시 세계를 재현하는 프레임으로서의 존재를 넘어서서 그 자체로 독립된 세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아직은 비어있는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이라고 생각하는가? 유치한 질문이지만 국내외 구분없이 영향받은 작가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일방적으로 주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의미 있는 언급과 질문을 하는 그림, 화가의 붓질이 겉돌지 않고 진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영향받은 작가는 너무 많지만 근래에는 유화 매체를 개발했던 15–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Weiden, Memling, Holbein, Vermeer 등등)의 그림에서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는다. 전통적인 유화 기법을 탐구하는데 동기부여가 됐고, 그 그림들에서 느껴지듯이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통찰력과 경건한 태도는 내 작업에 일정한 방향감각을 심어줬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사람이 주요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Inter-View 시리즈는 올해까지 그리면 100명을 채울 것이다. 내년 1월에 국제 갤러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이후로는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는 다른 두 가지 시리즈와 병행할 예정이다. 예전부터 그려왔던 개인사적인 이야기 그림과, 화가와 그 그림을 대상으로 하는 ‘The Manner of Painting’ 시리즈를 함께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