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의미, 해석

류용문, 이광호, 김형관
December 5, 2024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보는 주체와 사물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선을 따라 이루어지는 시선의 상호작용이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시선의 '주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선의 '주고–받는' 과정은 시각의 독특한 '상호–방향성/주관성', 혹은 서로를 참조하는 콘텍스트 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시선 그 자체는 이미 의미를 생성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해석되어야 할 어떤 것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모인 류용문, 이광호, 김형관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시선의 체계와 그것의 해석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다. 먼저, 보는 주체로서의 화가와 대상이 되는 사물간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화가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다. 즉 화가의 시선이 보고있는 사물에 어떤 식으로 닿느냐 하는 문제로서, 즉 흐물흐물하게 닿는가, 평평하게 닿는가, 또는 그것이 선이냐 면이냐 하는 차이에 따라 화가가 그림의 실제 제작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차원 자체가 달라진다. 다음으로는 관객(화가를 포함한) 과 캔버스 사이에서 형성되는 시선의 상호작용을 문제 삼는다. 따라서 봄과 보여짐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시선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전달과 수용과정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화가를 포함한 관객과 그림과의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각자의 그림들은 다른 그림들과 구별되는, 따라서 혼동될 수 없는 개별적인 스타일(Style)을 지닌다. 그럼에도 주된 관심사를 공유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유사성과 차이점, 즉 시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서로 겹쳐지는 형식/내용과 개성의 차이를 보다 섬세하게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일종의 '과제전' 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 형태를 택하였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을 동일한 물리적 조건 하에서 생각과 방법의 유사함과 차이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그 대상은 자기 자신의 자화상과 아울러 상대방 두 작가의 초상, 서로 이미 알고 지내는 두 남녀의 모습, 그리고 특정한 하나의 공간- 경복궁을 설정하였고, 각각의 대상을 그리는 캔버스를 동일한 모양과 크기로 제한하였다.
 
 류용문의 그림에는 화가, 즉 보는 주체의 시선 그 자체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을 서로 분리시키고 시선이 그사이를 오고 가게 함으로써 결국 시선 그 자체가 부각되는, '시선과 응시의 관계'를 다룬다. 관객은 화면 위의 한 지점과 화면에 그려진 공간의 한 지점, 즉 화면 뒤로 연장된 한 지점에 자신의 시선이 닿게 되고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시선의 빠른 움직임을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자신이 보내고 있는 시선과 자신을 바라다 보고 있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의 엇갈림과 충돌로 형성된다.
 
 김형관의 그림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화가의 시선과 사물 사이에 일종의 반투명한 막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그 막에 비치는 상황을 그 사물로 인식하는, 이를테면 빛에 의해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나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의해 생산되는 그 사물의 또 다른 상의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선 관객은 화면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거나 화면을 너무 지나쳐 버리는 시선의 흔들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류용문과 특히 김형관이 시선 자체의 문제를 표현양식의 문제로 끌어들이는 것에 비해, 이광호는 시선에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화면 앞에서 관객의 시선은 그가 장치해 놓은 여러 대상들 사이를 이리저리 자유롭게 좌표이동하고, 각자가 선택한 대상들과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처럼 화면의 표면 위를 가로지르는 시선의 움직임은 관객에게 임의적으로 서술적인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서 작용하며, 더 나아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생성하게 한다.
 
 그림은 표현 층위와 의미의 층위가 얽혀 있다. 그런데 그림의 표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을 새롭게 분절하고 그것의 고유성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하고 변형시키는 다른 주체, 즉 적극적으로 그림보기에 참여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따라서 그림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관객과의 관계를 통해서야 비로소 의미를 부여받는다. 관객의 의식 속에는 이미 그림을 보는 개별적인 구조가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관객에게는 이러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의미의 지도'를 바탕으로 보는 주체로서의 적극적인 그림보기, 즉 '창조적인 그림 읽기' 가 요구된다.
 
 창조적인 그림 읽기의 가능성을 단순한 탁상공론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타진해 보고픈 의도에서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 몇몇을 섭외 하여 인터뷰를 계획하게 되었다. 인터뷰의 방법은 우선 각자의 그림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 떠오르는 생각을 녹음기에 녹취한 후,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받아 적은 후, 최대한 그들이 이야기한 것의 핵심을 파악하여, 그것에 가장 근접한 부분의 언급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마다의 독특한 어법을 그대로 살리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또한 말을 문장으로 고쳐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자체 내의 토론과 판단에 의해 선별하여 내용을 다듬어 게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인터뷰에 응했던 분들의 생각을 왜곡하는 잘못이 있을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끝으로, 시간적으로 쫓기고 제반여건도 여의치않아 인터뷰 대상의 선정과 그 범위가 협소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기만족 할 만큼의 성과밖에 거두지 못한 점 등은 다음 전시를 통해 해결해 나가려 한다.
 
류용문, 이광호, 김형관
1997.6.
《Inter-View》(1997, 덕원갤러리) 도록